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근처 어디에도 내가 없어

들판에서 혼자 그려낸 만큼 피우고 섰다

그의 눈에 띄기 위해 그를 눈에 담기 위해

먼 길 통증도 분홍의 의지로 편입시켰다


나는 손이 시려도 잡을 수 없는 연인일지 모른다

나는 재미없는 정물이라고 풍장됐을지 모른다


익명으로 털올 바람이 배달되고

슬픔으로 자살하지 않을 만큼 배달되고

나는 내 얼굴을 몰라

몸속 깊이 함의한 그가 좋아한 색깔도 몰라

의심의 꽃대궁으로 그를 기다린다

수없이 많은 입술을 훔쳐 건너오는

오해의 여분만큼 그를 이해할 시간


꽃잎마다 그를 앓는 편지를 쓴다

어딘지 좀 채도가 부족한 생각일까

가끔 그를 거부하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

갖고 싶은 사람을 소유한 사람의 여유처럼

그가 잠시 빌려온 남의 애인이었으면 좋겠다

나침반 없는 시계를 찼으면 좋겠다

내 희망이 바삭 구워지기 전에


매음굴이라는 말로

공작소라는 말로

누군가 내 목을 따 갔다

그건 내 아름다움을 진술한 방식

어느 꽃씨 부족이 발성되는

그가 사는 거울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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